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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IORS

종이잡지의 結 / 纸质杂志的结

없음

올해도, 희망과 절망 속에서

재기와 포기를 반복한 희로애락의 한 해였다.

80년 평생을 산다 해도 윤날 20일까지 더하면 29,220일,

100년이라 해도 40,000일이 채 안 되는 게 일생이다.

길다 하면 길겠지만 짧다 하면 짧은 시간이다.

그리고 그 시간 안에는 온갖 우여곡절의 과정을 담은

무수한 시작과 끝들이 산재했을 것이다.

今年也是在希望和绝望之中

反复演绎着再次振作和放弃的喜怒哀乐的一年。

人就算活了80岁,加上20天的闰日,也不过29220天,哪怕活到100岁

一生也不到40000天。

说长也长,说短也短。

在这漫长的时间里散落着承载了各种曲折过程的无数开始和结束。



박인학│발행인

朴仁鹤│出版人


육상경기장에는 가운데의 필드 둘레에 직선과 곡선 코스로 이루어진 트랙이 있다. 건각(健脚)의 선수들은 그 평지 위에서, 100m의 직선코스를 내달리기도 하고, 여러 명의 선수가 배턴을 넘겨가며 이어달리기도 하며, 허들을 뛰어넘어가며 달리기도 할 뿐 아니라, 길게는 10,000m 지점에 있는 결승선을 향해 25바퀴를 돌기도 한다. 하지만 이 모든 경주를 하는 트랙의 한 바퀴 길이는 400m이다. 영어권에서는 ‘400’이란 용어에, ‘한 도시의 사교계 사람들이나 상류사회 인사’란 뜻을 부여하고 있기도 한다. 아마 이는 고대 도시국가들의 시민회의 즉 ‘에클레시아(Ecclesia)’라고 하는 400인회의(Council of Four Hundred)에 기원을 두고 있는 듯하다.

여하튼, ‘400’은, 한 인간이 힘을 다해 달릴 수 있는 한계이며, 어느 수준에 다다랐음을 뜻하는 의미를 갖고 있다.


1986년 10월에 창간한 월간인테리어(INTERIORS)가 이번 달로 399호를 맞아 지령 400호를 눈앞에 두게 되었다. 1주년 때의 감격도, 100호·200호·300호와 10주년·20주년·30주년을 맞던 감동도 컸다. 그러나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나도 모르던’ 2017년의 2월호였다. 그 해에도 아니나 다를까 1월 28일이 설날이었던 지라, 대개의 해처럼 2월호를 만드느라 허둥지둥하며 연초의 한 달을 보냈다. 그런데 뜬금없는 1개의 축하화분을 받았다. “창간 365호를 축하드립니다!” ‘왜? 앗! 그렇구나!’ 멍하니 있다 잠시 후 나눈 통화를 통해, 매일 1권의 잡지를 1년 즉 365일 동안 만들어야 오늘에 이르니 축하한다는 지인의 정감어린 목소리였다. ‘제법 오래 했구나…’하는 생각에 빙긋이 웃으며, 결국은 직원들과의 낮술로 자축을 했던 기억이 난다.


1970년 창간해 내년 2월의 50주년호를 목전에 둔 교양잡지 <샘터>가 그간의 재정난으로 인해 통간 598호인 이번호를 마지막으로 무기한 휴간을 결정했다. 한때는 50만 부 이상을 발행하며 명사부터 촌부까지의 수많은 이야기가 샘물처럼 차고 넘쳤던 터전으로, ‘담배 한 갑’보다 싸야 한다는 지론을 지켜온 잡지였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샘터에 가서 표주박으로 물을 들이키는 세상은 가고 편의점에서 플라스틱 병에 든 생수를 마시는 세태라 그런지 그 물이 말라들었다.“평범한 사람들끼리 모여서 가벼운 마음으로 의견을 나누며 행복에의 길을 찾아보자는 것이 ‘샘터’를 내는 뜻입니다. (중략) 샘터는 거짓 없이 인생을 살아가려는 모든 사람들에게 정다운 마음의 벗이 될 것을 다짐합니다.” 3년 전에 돌아가신 ‘샘터’ 발행인 김재순 님이 창간사에 적으셨던 글이다. 비범하다 여기는 사람들이 무거운 마음으로 행복보다는 향락만을 위해 거짓을 일삼으며 정 따위는 하찮게 여기는 세상이 된 것일까?

다행히도 벼랑 끝에 선 <샘터>에 손을 내밀어준 우리은행의 조건 없는 후원 덕분에 폐간은 면했지만 홀로서기가 버거운 국민잡지의 현실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발행인인 나로서는, ‘홍수 속에 먹을 물이 없다는 말처럼 독자는 아직도 목이 마르다. 결국, 독자가 마실 물을 대는 잡지가 살아남는다.’는, ‘샘터’의 폐간 소식을 전하는 한 종이신문 기사가 가슴을 파고든다.


어찌 보면, 마지막을 스스로 정할 수 있다는 것만도 천행(天幸)이다. 인간이 태어나는 것도 죽음을 당하는 것도, 모두가 자신의 기억 속에는 없는 게 인간지사이다. 잠시 후에 다가올 일상사도 모르는 게 십중팔구이며, 아무리 일기예보를 열심히 봐도 머리 위에 해가 비출지 빗방울이 떨어질는지조차 모르는 게 우리네이다.


結에 대한 단어들을 떠올려보니, 結이 뒤에 붙는 연결(連結), 집결(集結), 체결(締結), 타결(妥結), 종결(終結)과, 結이 앞에 있는 결론(結論), 결어(結語), 결말(結末), 결과(結果), 결실(結實), 결연(結緣), 결집(結集), 그리고 결혼(結婚) 등이 있다. 물론 결박(結縛)이나 동결(凍結)처럼 다소 부정적인 경우도 있겠지만, 結이 ‘실 糸’에 ‘길할 吉’을 더 한 字라 그런지, 대개가 그만 하면 그런대로 잘 끝났다는 의미인 듯하다.

싫든 좋든 한 해를 마무리해야 하는 12월이다. 황금돼지 띠의 해라고 해서 뭐라도 좀 들어오려나 바랐지만, 아직도 아프리카돼지열병만 창궐한 기해년이었다. 뭐 하나 움켜잡아 보겠다고 이리저리 뛰어다녔지만, 이제는 손아귀 힘이 빠져 거저 줘도 잡을 힘이 없을 지경이다. 야생동물에 비한다면 인간의 힘은 초라한 편이란다. 성인 남자의 평균 악력은 50㎏인데 비해, 인간과 유전자 차이가 고작 1%도 나지 않는다는 침팬지는 129㎏, 오랑우탄은 193㎏, 고릴라의 악력은 326㎏이란다. 그런 주제에 잡으려는 것만 많다 보니, 항상 육신은 빌빌 하고 머리와 가슴에는 스트레스만 가득한가 보다.


올해도, 희망과 절망 속에서 재기와 포기를 반복한 희로애락의 한 해였다. 80년 평생을 산다 해도 윤날 20일까지 더하면 29,220일, 100년이라 해도 40,000일이 채 안 되는 게 일생이다. 길다 하면 길겠지만 짧다 하면 짧은 시간이다. 말세를 논하기도 하고, 종말론을 들먹이기도 했지만, 우리가 사는 이 지구는 45억 여년 그러니 얼추 1조 6천 여일을 넘게 돌고 있다. 그리고 그 시간 안에는 온갖 우여곡절의 과정을 담은 무수한 시작과 끝들이 산재했을 것이다.

結과 엇비슷한 어의의 字로 終이 있다. 이 終에 겨울 冬이 들어 있는 것을 보니, 이래저래 스산한 이즈음이 마침표를 찍거나 안 된다면 쉼표라도 일단 남겨야 하는 계절인가 보다. 시종일관은 다 하지 못 했고 나름의 자초지종도 있었을 테니, 유시무종(有始無終)이라며 내려놓지 말고 결자해지(結者解之)의 마음가짐으로 유종지미(有終之美)를 이루어보자. “끝이 좋으면 다 좋다.”는 말도 있고, “All’s Well That Ends Well.”이라는 셰익스피어의 희곡도 있으니, 이 매듭을 위해 남은 이 시간에 있는 여력을 다 해봐야겠다.


‘타라후마라(Tarahumara)’라는 멕시코의 원시부족은 오로지 달리기로만 사슴사냥을 한단다. 사냥꾼이 고작 시속 20㎞로 추적하는 동안 사슴은 시속 70㎞로 달려 순식간에 먼 지평선 속으로 사라져버린다. 하지만 사냥꾼은 포기하지 않고 발자국을 살피고 냄새를 맡아가며 도망친 사슴을 찾아 계속 추격을 하다 보면, 결국 지쳐 쓰러진 사슴을 잡게 된단다. 인간을 제외하고는 그 어떤 육상동물도 42.195㎞를 한 번도 쉬지 않고 달릴 수 없기 때문이다. 마지막까지 타라후마라의 사냥꾼 마음으로 달려 보아야겠다. 다음 달에 태어날 400호를 향해!


“최상의 행복은 1년을 마무리하는 시기의 자신의 모습이 연초 때보다 더 나아졌다고 느끼는 것이다.” 유작 《인생의 길(The Pathway of Life)》을 남기고 떠난 톨스토이의 말이 있다.

또 조선시대의 승려 西山大師가 남긴 시 한 수도 있다.

踏雪野中去 답설야중거, 눈 내리는 벌판 한 가운데를 걸을 때라도,

不須胡亂行 불수호난행, 어지럽게 걷지 마라.

今日我行跡 금일아행적, 오늘 걸어간 이 발자국들이,

遂作後人程 수작후인정, 뒤따라오는 사람들에게 이정표가 되리니…

나부터, 창간사의 초심을 잊지 말자.


在田径赛场的中间,有一条由直线和曲线构成的跑道。运动健儿们在跑道上有时跑100米的直线路程,有时多名运动员传递接力棒进行接力跑,有时跨栏跑,再有甚者朝着一万米的终点线跑上25圈。但无论是哪一种跑法,这一圈赛道的长度都是400米。在英语国家有“400”这样一个专有名词,并被赋予了“一个城市的社交界人士或上流社会人士”的词义。它似乎起源于古代城邦的市民会议,也就是被称为“Ecclesia”的400人议会。

总而言之,400米是一个人能够竭尽全力奔跑的极限,意味着达到了某种水平。 


创刊于1986年10月的《空间设计(INTERIORS)》本月迎来了399号刊,刊龄400号近在眼前。1周年时的激动,迎来100号刊、200号刊、300号刊和10周年、20周年、30周年时的感动都不算小。但最令我印象深刻的是“我也没想到的”2017年2月号刊。那一年因为1月28日是春节,所以像往年一样为了制作2月号刊而手忙脚乱地度过了年初的第一个月,却意外收到了一个祝贺花盆。“祝贺创刊365号!”“怎么回事?啊!原来如此!”蒙了一会儿后,友人打来电话。那一头传来友人温暖的声音:“如果每天发行一本杂志,需要一年365天才会有今天,恭喜你!”我笑着想:“原来做了这么久了……”,我记得最后和员工们在大白天一起喝酒,自我庆祝了一番。

“发行《泉边》的意义在于让平凡的人们聚在一起,带着轻松的心情交换意见,共同寻找幸福的道路。(中略)我决心要让《泉边》成为所有真诚对待人生的人亲密的心灵伴侣。”这是3年前去世的《泉边》发行人金在淳在创刊词中写下的话。难道如今的世界已经变成了自命不凡的人怀着沉重的心情,一心只追求享乐而非幸福,将谎言变成家常便饭,不把人情放在眼里了吗?

幸好友利银行对站在悬崖边缘的《泉边》伸出援手,提供了无条件的支持,《泉边》才免于停刊,但国民杂志艰难度日的现实,令人惋惜不已。但对身为发行人的我而言,深入我心的是一则报纸介绍《泉边》停刊消息的话:“就像洪水之中无饮水,读者依然如饥似渴。最终,只有能够为读者解渴的杂志才能存活下来。”


从某一方面来看,能够自己决定结局已是天幸。诞生和死亡都不存在于记忆当中是人间常情。人十有八九不知道下一刻会发生什么样的日常之事,再怎么认真收看天气预报,我们也无从得知头上落下的究竟会是阳光还是雨点。 


说到与“结”有关的词汇,“结”出现在词尾的有连结、集结、缔结、妥结、终结;“结”出现在词首的有结论、结语、结末、结果、结实、结缘、结集、结婚等。当然,还有结缚或冻结这类略带消极意味的词汇,也许因为“结”字由绞丝旁“糸”与吉祥的“吉”组合而成,因此包含“结”字的词大多都表示到此为止或还算不错的收尾之意。

无论是否愿意,12月都是一年的结束。今年是金猪年,盼望着能够有所“进账”的己亥年,却仍未能摆脱非洲猪瘟的困扰。四处奔波想要抓住些什么,如今却是送到手边也没有力气去握紧。和野生动物相比,人类的力量实在不足一提。成年男子的平均握力为50公斤,相比之下, 基因与人类只相差不到1%的黑猩猩握力为129公斤,红毛猩猩为193公斤,大猩猩为326公斤。握力不过如此,想要抓住的东西却有很多,所以人总是肉体在受罪,大脑和内心满是精神压力。 


今年也是在希望和绝望之中,反复演绎着再次振作和放弃的喜怒哀乐的一年。人就算活了80岁,加上20天的闰日,也不过29220天,哪怕活到100岁,一生也不到40000天。说长也长,说短也短。虽然有人提及过末世,也有人把末日论挂在嘴边,我们所生活的这个地球已经自转了45亿多年,粗略算来有1.6万亿多天。在这漫长的时间里散落着承载了各种曲折过程的无数开始和结束。

与“结”语义相近的字有“终”。这个“终”字里带有“冬”,看来这是一个需要画下句号,或者至少应该留下一个逗号的清冷季节。如果不能做到“始终一贯”,那么应该有自己的“自始至终”,如果是“有始无终”,也不要放弃,试着报以“结者解之”的决心,实现“有终之美”。有句话叫做:“结局好则一切都好。”莎士比亚笔下有部戏剧就叫做《All’s Well That Ends Well(终成眷属)》。为了这个“结”,我们应该在剩下的时间里竭尽全力。


据说,一个名叫“塔拉乌马拉(Tarahumara)”的墨西哥原始部落仅靠奔跑来狩猎鹿。猎人在以时速20公里的速度追踪猎物时,鹿凭借70公里的时速眨眼间就消失在了地平线上。但是猎人们不会就此放弃,而是观察鹿的脚步,寻觅鹿的气味,一直追赶逃跑的鹿,最终一定能够抓到累倒在地的鹿。因为除了人类以外,任何陆地动物都无法一刻不停地持续奔跑42.195公里。让我们抱着塔拉乌马拉猎人的心态奔跑到最后,奔向即将于下月诞生的400号刊。 


“最幸福的事是在一年结束之际,发现自己比年初时有所进步。”这是留下遗作《生命之路(The Pathway of Life)》后离开人世的托尔斯泰所说的话。

朝鲜时代的僧人西山大师也曾留下过这样的诗句:

“踏雪野中去,不须胡乱行。今日我行迹,遂作后人程。”

从我开始,不要忘记创刊词的初心。是的,不忘初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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